여행의 모든 일정은 유동적이며 항공편 출도착 및 현지 교통사정에 의해 임의로 변경될 수 있습니다.
김해 (PUS)출발
2025.04.19(토)
21:55
에어부산
3시간 40분 소요
서안 (XIY)도착
2025.04.20(일)
+1일
00:35
김해국제공항
김해국제공항
서안
서안 도시개요 - 소개 : 중국의 대표적인 관광도시의 하나인 서안은 섬서성(陝西省)의 성도로 인구는 약 700만 명이며, 관중 분지의 중앙부에 위치해 있다. 역사적으로 과거 동양과 서양의 문화 교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실크로드의 기점이며, 우리에게는 서안보다는 오히려 당나라의 도읍지였던 장안(長安)이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고도(古都)이다.
기원전 10세기~11세기초에 걸쳐 한나라와 당나라 등 많은 왕조가 이곳에 수도를 두었다. 그와 동시에 진의 시황제, 한의 무제, 당 태종, 현종, 양귀비 등 역사상의 영웅과 히로인을 많이 배출한 도시이다. 또 서안은 실크로드의 기점으로도 유명하다. 실크로드라는 이름에 걸맞게 실크와 차, 자기 등은 중앙아시아를 통해 유럽으로 건너갔고, 중국에도 서방의 산물과 문화가 전해졌다.
현재 서안은 국내외의 많은 관광객이 찾는 관광 도시, 그리고 중국 서북북의 정치 경제의 중심지로서 지속적인 발전을 이룩하고 있다.
기후 - 월별기온 : 기후는 대륙성 기후이며 일년 내내 건조한 편이다.
시차 - 시차 : -1 가는방법 - 도시로 : 서안 세계 원예 박람회 간단 TIP
고대 실크로드(SILK ROAD)의 시발점으로 동서양의 문물교류가 화려한 꽃을 피운 중국의 대표적인 고도 서안에서 [천안장안(天人長安) 창의자연(創意自然)-도시와 자연희 상생]을 주제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109개의 실외 전시관이 있는 [2011년 서안세계원예박람회 - 2011 XIAN EXPO] 참관
-서안세계원예박람회를 대표하는 4대 건출물 : 장안탑, 창의관, 자연관, 광운문 -5대 테마 원예 명소 : 장안화곡, 오채종남, 사로화우, 해외대관, 패생채홍 -3대 특색 서비스 구역 : 패상인가, 야풍수안, 유럽풍정 -국내외 진귀한 예술품, 조소, 희귀한 조류와 동물 -홈페이지 : http://www.expo2011.cn -폐막식 : 10월 20일-22일 교통편 - 택시 : 북경,상해,광주,청도,우루무치등으로 직행열차가 운행되고 있다. 언제나 유동인구가 넘쳐나지만, 시발열차 또한 많기 때문에 기차표 구입도 비교적 쉬운 편이다. 노동절과 춘절만 잘 피한다면 언제든지 침대표를 구할 수 있다. 출발 3일전부터 예매 가능. 주의사항 - 총괄설명 : 비수기에 시안을 방문하면 정부가 운영하는 투어버스 운영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심지어 찾는 이가 드문 노선은 아예 운행을 중지하기도 한다. 시외각에 볼거리가 많기 때문에 하루 전에 스케줄을 확인하고 아침 첫차를 이용해서 외곽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이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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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 국제공항 도착 후 가이드 미팅
호텔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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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차
2025/04/20(일)
서안
호텔 조식 후 가이드 미팅
대안탑(북광장)
개요 : 당 용휘2년(652년)에 현장법사가 자은사에 세운 탑입니다. 현장법사는 손오공과 사오정, 저팔계가 등장하는 서유기의 삼장법사라고 전해옵니다. 당나라 때의 고승 현장이 인도에서 돌아올 때 경전을 가지고 왔고, 이 경전을 보존하고 번역하기 위해 황제에게 요청하여 탑이 건립되었습니다. 최초에는 5층으로 건립되었으나, 당 고종이 9층으로 재건하였고, 측천무후가 1층을 더 올려 10층으로 증축하였습니다. 이후 전란에 파괴되어 여러 번의 복원 공사 끝에 지금의 7층으로 남아있습니다. 탑 입구에는 당태종이 쓴 ‘대당삼장성교지서’와 당고종이 쓴 ‘대당삼장성교지서기’를 당대 명필 저수량의 글씨로 새겨진 비석이 있습니다. 탑 안으로 들어가면 나무로 된 나선형의 좁은 계단을 따라 꼭대기 층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각 층마다 동서남북으로 만들어진 아치형 문으로 서안의 풍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당대의 두보(杜甫) 등 많은 시인이 대안탑에 올라와 서안의 풍경을 보고 시를 남겼습니다. 당대에는 진사에 급제하면 먼저 곡강(曲江), 행원(杏圓)에서 잔치를 열고 장안에서 가장 높은 대안탑에 올라와 탑 벽에 시를 쓰고, 급제자의 이름과 관적, 급제시기를 남기는 것을 최고의 명예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관광포인트 : 대안탑 광장은 대안탑을 중심으로 북광장, 남광장, 안탑동원, 안탑남원, 보행도로로 구성됩니다. 대안탑 북광장은 아시아에 제일 큰 분수광장과 수상공원뿐만 아니라 문화광장과 원림풍경 등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대안탑 광장의 아름다운 야경에 대안탑의 음악분수까지 더하여져 서안의 대표적인 관광명소가 되었습니다.
개장시간 : 3~10월 08:00~17:30 11~2월 08:00~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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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박물관
대당부용원
[전동카 포함]
개요 : 당 현종(唐玄宗)의 행궁이었던 부용원 유적지에 지어진 대형 황실 원림식 문화테마파크입니다. 부용원은 수(隋)나라 때부터 약 1,300년의 역사를 지닌 곳입니다. 우리나라 민속촌과 같이 당나라 시대의 생활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당 현종은 부용원 행차 편리를 위해 장안성 동쪽 성벽에 황제전용통로를 만들어 대명궁, 홍경궁, 그리고 부용원을 연결하였습니다. 대당부용원은 중국의 유명한 여류 건축설계가 장금추(??秋)가 전체 설계하였습니다. 자운루(紫云?), 사여관(仕女?), 어연궁(御宴?), 방림원(芳林苑), 봉황구천극원(??九天?院), 행원(杏園) 등 당나라 전성시대의 화려함을 담은 건물이 늘어서 있습니다. 남문에 들어서면 자운루(紫云?)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 손오공과 저팔계, 사오정 그리고 삼장법사를 만나게 됩니다. 거대한 사자석상이 있는 원공문을 지나면 당대의 지도가 바닥에 펼쳐져 있고, 그 뒤로 자운루의 웅장한 모습이 보입니다. 계단을 오르면 장안성을 내려다보고 있는 당 태종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해질 무렵이면 자운루 앞에 있는 인공호수에서 분수처럼 물이 뿜어져 올라오고, 그 위로 레이저가 쏘아지면서 세계 최대 규모의 수막(水幕)영화가 펼쳐집니다. 그 옆에는 시선(詩仙) 이백, 시성(詩聖) 두보, 시불(詩佛), 왕유, 시귀(詩鬼) 이하 등 당대의 유명한 시인들의 조각상이 작품과 함께 협곡을 이루는 시귀(詩鬼)가 있습니다. 사여관(仕女?)에는 당나라 여인들의 옷차림과 화장법 등 다양한 여인상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관광포인트 : 대당부용원은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그린 중국 드라마 ‘대당부용원’의 촬영지로 소개되면서 유명해졌습니다. 춘절 전후로 등불축제가 열리는 데 화려하고 몽환적인 야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개장시간 : 5월 1일~10월 7일 09:00~22:00(월~금), 09:00~23:00(토,일) 10월 8일~4월30일 09:00~21:00(월~금), 09:00~21:30(토,일) 《?回大唐》 17:00~18:10, 수막영화 19:45~20:08 자운루 공연 14:30, 16:30, 17:45 분수쇼 15:45, 18:00(주말) 20:20, 21:03(레이져쇼),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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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쇼
[★포함공연] 낙타방울소리의 전설 : 실크로드쇼 관람
실크로드의 역사와 문화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실크로드쇼 (낙타의 방울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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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로 이동 후 휴식
3일차
2025/04/21(월)
서안
호텔 조식 후 가이드 미팅
진시황릉
개요 : 서안에서 약 30km 떨어진 곳에 고대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제가 잠들어 있습니다. 진시황릉은 동서로 345m, 남북으로 350m의 단을 쌓고 높이 43m의 거대한 무덤입니다. 중국에는 ‘사사여생 (事死如生)’이란 말이 있습니다. 죽어서도 영원히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황제들은 자신들의 능묘 건설을 중요시하였습니다. 13세에 황제의 자리에 오른 진시황도 36년의 세월과 최대 70만 명의 노동력이 투입하였다고 합니다. 중국학자들이 1962년부터 본격적인 진시황릉 연구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지질탐사와 항공관측 등을 통해 사마천의 이야기(관광포인트 참조)가 허구가 아니라는 사실도 밝혀지고 있습니다. 흙 표면에서 35m 아래에 지하궁전이 있으며, 주변에는 성벽이 둘러쳐져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또 지표면의 수은 함량을 조사한 결과 정상보다 20~30배 많은 것도 확인했습니다. 중국 문화재 당국은 현재의 고고학 발굴 기술로는 진시황릉의 훼손이 불가피하므로 앞으로 수십 년간은 발굴 계획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쉽지만 여행자가 볼 수 있는 것은 진시황의 화려한 능이 아닌 나지막한 야산 뿐입니다.
관광포인트 : 사마천이 쓴 사기-진시황 본기에 따르면 진시황릉은 땅을 깊게 파서 구리 녹인 물을 사방에 부은 다음에 궁전 모형과 문무백관의 자리를 만들고 진귀한 보물로 가득 채웠다고 합니다. 후세에 보물을 노리는 침입자를 대비해 화살이 자동으로 발사되는 기계를 설치하였고, 무덤 주위에는 수은이 섞인 강물을 흐르게 했습니다. 무덤 위쪽에는 보석으로 천체의 별을 장식하고, 벽에는 일월성신을 그려 넣었습니다. 바닥에는 산천지형도를 표기했으며, 고래기름으로 촛불을 밝혀 오랫동안 불이 꺼지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후궁 가운데 처녀들과 보물과 기계의 위치를 아는 사람은 모두 순장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마지막으로 릉 위에 흙을 덮은 다음 나무를 심어 그곳이 진시황의 무덤인지를 알지 못하게 마무리했다고 합니다.
개요 : 1974년 서안 외곽의 시골 마을에서 가뭄 때문에 우물을 파던 농부에 의해 도용(陶俑) 조각이 발견되었습니다. 2,200여 년간 진시황의 사후 세계를 지키던 수천 점의 병마용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병마용(兵?俑)’은 흙으로 빚어 구운 병사와 말을 가리킵니다. 전사자를 대신해서 매장한 토용인 것입니다. 진시황릉에서 동쪽으로 약 1.5km 떨어진 곳에서 모두 7개의 갱이 발굴되었습니다. 현재 둘러볼 수 있는 곳은 1, 2, 3호 갱입니다. 1호갱은 보병 부대, 2호갱은 기병과 보병, 궁수 등, 3호갱은 군사 지휘부로 알려져 있습니다.
관광포인트 : 병마용 갱(병마용박물관)은 출토된 토용을 꺼내지 않고 그 위에 거대한 돔 형태의 천장을 덮어 발굴된 상태 그대로 관람할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발견된 1호 갱은 길이 230m, 넓이 62m 규모로 가장 큽니다. 거대한 갱에는 6,000여 점의 도용과 도마 및 40여 점의 전차가 진형을 갖추고 있습니다. 앞부분은 어느 정도 복원되어 제 모습을 갖추고 있지만 뒷부분은 지금도 복원 중입니다. 1호갱은 보병이 중심이지만 말과 전차도 일부 편성되어 있습니다. 가장 앞에 있는 선봉대는 좌우로 긴 3열 횡대 형태로 앞으로 나가는 배치입니다. 선봉군 뒤에는 토담 안에 4열 종대로 서있는 병사들은 손에 창과 칼, 활 등 무기를 들고 있는 중장비 주력부대임을 알 수 있습니다. 대군이 집결하여 명령을 기다리는 듯한 수천여 점의 병마용이 펼치는 모습은 천하통일 당시의 진나라의 군사력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2호 갱은 병마용이 1,300여 점, 나무전차가 80여 승이 있을 것으로 추산됩니다. 보병과 기병, 궁수, 전차 등이 혼합된 군 진형입니다. 활을 쏘는 병사들 중 앉아서 쏘는 병사, 서서 쏘는 병사의 토용도 발견되었습니다. 1호 갱이 주력부대라면 2호 갱은 주력부대를 지원하는 기동력 있는 부대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각각의 병마용에 대한 모형도를 통해 역할 및 배치도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히, 흠집 하나 없이 수천 년을 버텨온 갑옷 입은 병사를 만날 수 있습니다. 갑옷에 선명하게 붉은색 채색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호 갱은 지휘부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동쪽 입구에 비탈진 통로로 들어가면 전차가 배치된 차마방이 있습니다. 가운데는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지휘부 마차가 있습니다. 3호 갱에 있는 무사병용들은 호위병입니다. 병마용 모형물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이 유료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진시황제릉문물전시관’에는 여러 가지 직군의 도용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인 유물은 진시황제의 능 안에서 발견된 청동마차 2량입니다. 4마리 말이 마차를 끌고 있으며, 1호 차 앞쪽 마차의 좌석 위에 우산이 있고, 2호 차는 황제 전용으로 둥근 지붕이 있습니다. 진시황은 통일 이후 다섯 번의 전국적인 순행을 하였습니다. 평상시 진시황제가 사용하던 것을 사후에도 즐기기 위해 합장하였습니다. 이 마차는 복제품이지만 세밀한 작품에서 진나라의 높은 기술을 엿볼 수 있습니다.
개요 : 서안에서 동쪽으로 30km 떨어진 여산(?山)에 있는 화청지(??池)는 양귀비와 당나라 현종의 사랑놀이가 펼쳐지던 온천입니다. 이곳은 3,000년 전부터 효험 있는 온천으로 알려져 역대 황제들이 온천욕을 즐겼습니다. 서주(西周) 말기, 주유왕(周幽王)은 화청지를 여궁(??)으로 지었습니다. 진나라 때부터는 여산탕(驪山湯)이라고 불렸으며, 이후 당태종 이세민이 이곳을 탕천궁(?泉?)을 짓고 몇 차례에 걸쳐 넓혔습니다. 당 현종이 집권하던 747년에는 황제가 머물기 위한 본격적인 공사를 벌여 화청궁(華淸宮)으로 정비되었으며, 온천은 화청지(??池)라고 불렸습니다. 당현종이 양귀비와 낭만적인 사랑을 할 당시에는 화청지가 당대의 정치 중심이 될 정도로 번성하였습니다. 청나라 말 서태후도 8개국 연합군 공격으로 북경이 함락당한 후 서안으로 피난 중에도 이곳에서 온천을 즐겼다고 합니다.
개장시간 : 3~11월 07:00~19:00 12~2월 07:30~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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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로 이동 후 휴식
4일차
2025/04/22(화)
서안
호텔 조식 후 가이드 미팅
서안성벽(명대성벽)
[자전거 포함]
개요 : 황소의 난 이후 수도를 낙양으로 옮기고, 오랜 전란을 거치는 동안 장안성은 철저히 파괴되었습니다. 명나라 초기 주원장의 둘째 아들 주협이 진왕으로 봉해지면서 장안성은 재건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명나라 때 서안 성벽은 당나라 장안성의 기초 위에 증축되었습니다. 그 후 끊임없이 보수되면서 중국에서 가장 보존이 잘 된 성벽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초기의 성벽은 방어용으로 만들어졌으며, 성곽 가장자리에는 해자가 있고, 이중문으로 되어 있는 ‘수비형 요새’입니다.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은 높이가 12m, 폭이 15m로 여러 대의 마차가 동시에 다닐 수 있습니다. 서안 성벽은 중국에서 가장 잘 보존된 성벽이지만 여러 차례 파괴될 위기를 겪었습니다. 첫 번째는 1950년 서북군정위원회에서 성벽철거가 제기되었지만 다행히 철거금지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대약진 운동 때에도 도시 확장을 위해 성벽철거가 주장되었지만 국무원에서 서안성벽 보호하라는 공지가 내려졌습니다. 이후 1961년 서안 성벽은 제1차 전국중점문물 보호단위로 선정되었습니다. 비록 철거는 면했지만 성벽 곳곳이 파괴되고 무너진 상태로 방치되었습니다. 성벽을 훔쳐가는 일도 빈번했습니다. 1981년 중앙정부에서 관심을 끌게 되면서 많은 사람이 성벽복원을 위한 모금을 참여, 20여 년의 보수 끝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관광포인트 : 성벽이 넓고 길기 때문에 자전거나 전동차를 타고 둘러보는 걸 추천드립니다. 성벽은 남문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남문이 서안 성문 중 가장 오래되었으며, 복원이 가장 완전하게 된 성문이기 때문입니다.
개장시간 : 5~10월 08:00~19:00 11~4월 08:00~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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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림
개요 : 비림박물관은 북송 원이년(1087년) 당나라 문종이 경전을 새겨 넣은 비석 104점 65만 자의 개성석경이 방치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여대충(呂大忠)이 문묘 뒤로 옮기면서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수, 당, 송나라에 걸쳐 역대의 명필을 새긴 비석을 계속 수집하여 빼곡하게 늘어선 비석의 모습이 마치 울창한 숲과 같다고 하여 ‘비림(碑林)박물관’이라 불리웁니다. 비림박물관에는 7개의 전시실에 시안에서 출토된 비석 11,000여 점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한나라 때 비석부터 약 2000년 세월의 뛰어난 작품이 시대별, 계열별, 서체별로 갖추어져 있어 중국 고대 서법의 보고, 역사 문화의 보고, 서법 예술의 전당이라고도 부르고 있습니다.
개요 : 서원문 고문화거리는 서안 서쪽의 남문 안에서 동쪽의 바이수린 거리어구까지를 말합니다. 성벽을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면, 서안 비림박물관과 만나게 됩니다. 서원문 거리 안쪽에 ‘관중서원(?中?院)’이 있습니다. 본래 서원이란 이름도 “관중서원”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관중서원은 명(1368~1644년), 청(1616~1911년)대 섬서성의 최고의 학부였습니다. 중국의 유명한 4대 서원 중 하나였을 뿐 아니라 서북지방 4대 서원의 으뜸으로 꼽힙니다. 현재는 섬서성 서안사범학교로 되어 있습니다.
관광포인트 : 서원문 입구의 패방에서 시작하여 비림박물관까지 이어진 길은 서안사람들의 긍지를 담은 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안의 유명한 고문화거리로서 마치 우리나라 인사동거리와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길게 늘어서 노점에는 금석서화(金石書畵), 책과 그림, 골동품, 옥조각, 문방사우, 공예품 등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현재 중국의 100위안짜리 지폐 위의 초상의 작가는 바로 서안화가인 리문서(?文西)입니다. 그의 작품은 서원문에도 적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현지인들에게는 예스러운 물건들이 가득한 보물창고와 같은 곳입니다.
개장시간 : 거리(24시), 상점(08:00~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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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룡사
개요 : 와룡사는 서안 최초의 불교사원이며, 서북지역에서 가장 큰 선종사찰입니다. 와룡사는 한나라 영제 때 창건되었으며 1,8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수나라 때 상서로운 징조의 절이란 의미로 ‘복응선원(福??院)’으로 불렸습니다. 당 시기에는 ‘관음절’로 바뀌었고, 송 시기 때 “와룡사”가 되었습니다. 와룡사 중간에 5개의 문이 있는데, 첫 번째 문은 산문(山門),두 번째 문은 천왕전(天王殿),세 번째는 대웅보전(大雄?殿), 네 번째는 대비전(大悲殿),다섯 번째는 법당(法堂)이며, 그 중간에 “관음전(?音殿), 조사전(祖?殿) 등과 같은 불전이 있습니다. 절 내의 많은 문화재는 모두 충분한 가치가 있으며, 송함평(宋咸平) 6년에 동으로 주조한 ‘유명(幽冥)종’, ‘적사판대장경 (?砂版大藏?)’,명홍무(明洪武) 20년에 세운 ‘정묘불족적비(丁卯佛足迹碑)’, ‘당오도자화관음상석비 (唐?道子??音像石碑)’ 등 모두 높은 역사적 문화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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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로군 기념관
개요 : ‘팔로군 서안 판사처 기념관’은 서안사변 직전까지 공산당의 아지트였습니다. 주은래로부터 서안에 비밀 아지트를 만들라는 명령을 받은 유정이 독일인 히버트와 함께 서안 칠현장에서 치과병원을 개업하였습니다. 병원은 위장일 뿐, 연안에 있는 홍군에게 필요한 의약품, 의료기계, 통신기자재 등 물자를 공급과 옌안으로 가는 통행증을 발급해 주던 곳이었습니다. 1936년 “서안사변” 평화협정 후, 국민당과 공산당은 점차 전쟁에서 평화로 바뀌었고, 팔로군 업무를 처리하는 곳은 반공개적 연락소로 바뀌었습니다. 1937년 8월 홍군의 주력부대가 정식으로 국민혁명 제8로군에 편제됨에 따라 ‘국민혁명군 제8로군 주섬서 판사처’로 명칭을 변경하였습니다. 제2차 국공합작 기간 동안 항일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실질적으로 주은래, 주덕, 유소기, 팽덕회, 엽검영, 등소평 등 공산당 간부들이 머물렀습니다. 전체 10동의 사합원식의 건물인 기념관은 현재 1, 3, 4, 7호와 주은래 등 오랜 혁명가들이 거주했거나 사무를 보던 곳, 그리고 외국 벗들이 거주했던 곳이 복원 개방되었습니다. 1호원은 주요한 사무처리를 하는 곳이었습니다. 1959년 복원 이후 주은래와 주덕, 임백거의 서언, 사진 등과 함께 당시 팔로군이 사용하였던 무기와 생활공간, 서류, 인장, 보도사진, 간행물, 열사들의 친필 원고 등 혁명문물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3, 4호원은 각 부처 및 일하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이며, 7호원은 숙박하는 곳이었으며, 현재 이곳은 항일전쟁 당시의 비참한 중국의 상황을 담은 사진과 자료들이 전시되어 일본인들의 만행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개장시간 : 09:00~17:00, 월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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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가의고부
개요 : 400여년전 명조말기에 고악송이라는 사람이 12세에 문관을 뽑는 시험에서 2등을 하여 황제로부터 하사받은 자택으로 그 면적이 2300㎡ 입니다. 이 주택의 우아한 분위기에서 손님들은 옛 주인의 서향적인 풍모를 엿볼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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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족거리
개요 : 서안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곳이 ‘회족거리’입니다. 고루 뒤로 돌아가면 길게 뻗은 골목이 시작됩니다. 다양한 이슬람 문화와 먹거리를 즐길 수 있는 서안의 대표 먹자골목입니다. 그리 길지 않은 거리지만 서안의 별미를 한 곳에서 즐길 수 있기에 항상 현지인과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입니다. 특히 해가 지고 가로등 불이 켜지면 더 많은 인파가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손에 먹거리 하나씩 들고 또 다른 먹거리를 찾아 헤매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서안의 유명한 양꼬치, 러우자모, 석류 주스 등 대표 먹거리를 모두 맛볼 수 있으니 저녁 대신 방문해도 좋습니다. 과거 실크로드를 통해 들어온 중동 상인들이 터전을 잡고 살게 된 것이 오늘날 후이족 거리의 기원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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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루 광장
개요 : 종루는 서안의 상징적인 건축물입니다. 종루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뻗은 사대거리는 성벽의 동문, 서문, 남문, 북문과 연결됩니다. 1384년 명 태조 홍무 17년(明太祖 洪武)에 지은 종루는 현재 고루 옆에 지었습니다. 이후 명 신종 만력10년(1582년)에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였습니다. 외형적으로는 청 벽돌로 쌓고 3중 처마, 4각 천장, 그 위에 다시 진녹색의 유리기와를 올렸습니다. 지붕 꼭대기의 유리로 된 연꽃 보좌에는 6m 높이의 금빛 원형 보정이 세워져 있는데 이는 명대 건축 예술의 독특한 모습입니다. 누각 안에는 위로 오르내릴 수 있는 층계가 있습니다. 지붕의 용마루는 아무런 장식도 가하지 않았으나 상당히 웅장해 보입니다. 중국 내 남아 있는 수많은 종루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보존이 뛰어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약 40m 높이의 목조 건물에 당나라 때 청동으로 만든 경운종이 매 시마다 시간을 알려 주는 시계탑 역할을 했습니다. 지금의 종은 복제품이고, 진짜 경운종은 비림박물관에 소장하고 있습니다. 1995년부터 진왕편종 등 고대 악기를 전시하고 또 고대 음악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320개의 조명등이 여러 각도에서 4층 건물을 조명함으로써 서안을 대표하는 야경 명소가 되었습니다.
관광포인트 : 종루 앞 광장에 있는 스타벅스는 만남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해가 지면 종루의 아름다운 야경을 사진에 담기 위해 많은 사람이 찾습니다. 광장의 오른쪽으로 계단을 올라가면 서안의 맛집, 덕발장과 동성양이 있으며, 지하 광장에는 먹거리와 쇼핑몰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개장시간 : 3월 26일~10월 25일 08:30~20:30 10월 26일~3월 25일 08:30~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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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로 이동 후 휴식
5일차
2025/04/23(수)
서안
호텔 조식 후 가이드 미팅
화산
★서봉케이블카 왕복
개요 : 중국의 5대 명산(오악)으로 손꼽히는 화산은 산세가 험하고 하늘 아래 가장 가파른 산으로 유명합니다. 태화산(太華山)으로 불리다가 한무제가 화산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화산의 ‘화’는 꽃을 상징하며, 실제로 꽃이 많아서가 아니라 주변에 우뚝 솟은 바위봉들이 마치 꽃의 형상과 같기 때문입니다. 산 전체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통바위산으로 남성적 강인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중국을 상징하는 ‘화’가 화산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며, 화산을 ‘화하’의 뿌리라 합니다. 화산은 조양봉(동봉 2,096m), 낙안봉(남봉 2.154m), 연화봉(서봉 2,082m), 운대봉(북봉 1,6 14m), 옥녀봉(중봉 2,037mh) 등 봉우리가 하늘을 찌를 듯 우뚝우뚝 솟아 있습니다.
관광포인트 : 화산에 오를 때는 두 가지를 버려야 합니다. 첫째는 만용과 함부로 발아래를 내려다보는 보는 것입니다. 만용을 부리며 빠르게 오르다 보면 도중에 지쳐서 더 이상 오르기 어렵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찔하여 더 이상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과욕입니다. 화산에서 과욕을 부려 위험한 코스를 등반하는 것은 생명의 위험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을 명심해야 합니다.
관람소요시간 : 북봉 왕복 케이블카: 약 3시간 서봉 왕복 케이블카: 약 5시간 서봉 + 북봉 케이블카: 약 6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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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차
2025/04/24(목)
김해 → 김해
서안국제공항 출발
김해국제공항 도착
김해국제공항
김해국제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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